Template:Potd/2017-08-12 (ko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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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콰드리가(4두 2륜 전차). 이 문은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이 평화의 표시로 의뢰하여 1788년에서 1791년 사이에 세워졌다. 이 문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전후 분단된 시대의 독일에서는 베를린 장벽에 인접하여 고립되고 접근이 불가능했다. 이 문의 주변은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와 이어진 1990년의 독일의 재통일에서 언론에 특별히 자주 등장했다. 1806년 예나-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프로이센을 물리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처음으로 이 브란덴부르크 문을 승리의 행진에 이용하였고 문의 콰드리가를 파리로 가져갔다. 1814년 프로이센이 나폴레옹을 격퇴하고 파리를 점령한 후 이 콰드리가는 베를린으로 반환되었고 프로이센의 개선문으로 다시 설계되었다. 이 문은 2000년에서 2002년 사이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.

 Template:Potd/2017-08-12

This is the Korean translation of the Picture of the day description page from 12 August 2017.

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콰드리가(4두 2륜 전차). 이 문은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이 평화의 표시로 의뢰하여 1788년에서 1791년 사이에 세워졌다. 이 문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전후 분단된 시대의 독일에서는 베를린 장벽에 인접하여 고립되고 접근이 불가능했다. 이 문의 주변은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와 이어진 1990년의 독일의 재통일에서 언론에 특별히 자주 등장했다. 1806년 예나-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프로이센을 물리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처음으로 이 브란덴부르크 문을 승리의 행진에 이용하였고 문의 콰드리가를 파리로 가져갔다. 1814년 프로이센이 나폴레옹을 격퇴하고 파리를 점령한 후 이 콰드리가는 베를린으로 반환되었고 프로이센의 개선문으로 다시 설계되었다. 이 문은 2000년에서 2002년 사이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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